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어떻게 풀면 될까?


시선을 돌리면 된다.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영역에서 무언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어느정도 해결이 된다. 다만, 그러한 문제가 지속해서 터지지 않는다면 상관 없으나 그렇게 시선을 돌리면서도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터지고 도저히 수습하기가 어려운 정도로 일이 진행되면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글쎄, 무엇이든지 불투명한 상황이라면 정확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목표를 찾아서 하는 게 옳다.


어떤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더라도 결국 다른 이들의 삶은 나와는 관련이 없고, 내가 하는 행동의 끝에서 얻는 결과물은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남는다.


입이 가볍다. 말을 쉽게 한다. 혼자서 알고 있어라. 조용히 지는 것이 좋다. 이런 류의 말은 어느정도는 옳은 말이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를 우선해서 생각하면, 어느정도 질러두는 편도 나쁘지 않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는 타인을 향한 나의 갈등이 표출되는 과정이라고 해둘까.



특정한 기준에서 판단하고, 이를 처리할 만한 책임이 없다면 그 대상에 신경쓰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판단이 최종적으로 나에게 좋지 못한 행동일 경우에는 적절한 수준에서 짤라내는 게 좋다.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가진 이 모든 생각들은 어딘가에 묻어둘 곳이 필요하다. 스트레스가 시작되는 근본이 있다면, 그리고 그 스테르스를 빠르게 처리할 수 없는 상태라면, 잠시라도 좋으니 떼어두고 삼자의 입장에서 지켜보기 바란다.



이건 지금 내게 하고 싶은 말들...

이어서 쓴다는 걸, 어느새 2달이 지나고 있다. 


그녀에게 고백한다고 마음 먹고 전전긍긍한 지도 6개월이 넘었다. 다들 포기하라고 말한다. 시작도 하지 않고 끝을 생각하는 당신의 마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그렇게 혼자서 두고두고 볼거면 도대체 왜 그렇게 피곤한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지난 월요일 밤, 대학 시절 좋아했던 여자 아이를 만나는 꿈을 꾸었다. 그곳은 파티가 열리는 장소로, 그녀가 주인이거나 주인과 친분이 있는 관계로 보였다. 왜냐면 그녀와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항상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어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으니까.


그녀는 내게 중요한 말을 하고 싶은 눈치였다. 대화를 하던 다른 사람이 떠나면,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입술을 움직이려고 했다. 번번히 사람들이 방해해서 자리를 여러 번 옮기기도 했다. 그러나 다들 그녀가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는 듯 "나...", "저기..." 등의 말을 하는 순간 등장해서 말을 막았다.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반드시 그녀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 꿈에서는 도저히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 잠에서 깨어나서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입술이 움직이는 모습을.


소리를 내 밖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입술은 확실히 내게 어떤 말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알겠다고. 나도 지금껏 그랬으니 너에게 말하지 못한 게 미안하다고. 대답했으면 그녀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했다. 왜 그녀가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던걸까?



그래서 오늘은 결판을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꿈에서 나온 그 아이는 아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상대방에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옆에 그녀가 있다. 말을 하려고 아까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으나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 이대로 오늘은 그냥 넘어가는 걸까... 말해야 한다.


꿈에서 그녀에게 말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다. 더 이상 후회할 것을 두진 않겠다고 생각했으니 하고 싶다.



그렇다. 꿈과 목표, 그리고 여자는 아직도 내게는 진행중인 이야기로, 언제 끝날지, 그리고 그 끝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나도 모른다. 모두의 인생도 비슷하겠지. 모두 즐거운 인생을 보내기를 바라며...



이만 고백하러 가보겠다.

내가 여자를 사귀지 못한 이유는 글쎄 왜일까. 돈이 없었기 때문은 아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돈이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던 적은 없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 부모님이 주시는 돈이 꽤 많았기 때문에 나름 풍족하게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은 전세를 내서라도 괜찮은 집에서 머물기를 바랐으며, 아무리 힘들어도 밥은 먹어야 한다면서 필요한 식비보다 더 많은 금액을 입금하셨다.


분명 여자를 사귀는 것도 가능했다.


첫사랑, 순정은 고등학교 때였다. 남고라서 학교 내에서 여자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걸어서 5분 거리에 동일한 이름의 여고가 있었으며 동아리 연합에서 동일한 관심사로 그녀들과 함께 목표를 향해 달렸다.


내 첫 번째 순정의 대상은 신비한 아이였다. 그녀는 만화를 잘 그렸고, 수수했으며, 말을 붙이면 수줍게 받았다. 그녀는 내가 대하기 어려운 상대였기에 그녀의 친구를 자주 만나며 내 마음을 고백했다. 그녀를 좋아하고 있으니 어떤 아이인지 알려달라고.


그러면서 그녀의 친구와 꽤 친해졌다. 노래방, 내가 좋아하던 그녀는 일본 노래를 잘 불렀고, Aiko의 하나비를 너무도 사랑스럽게 발음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고백을 했던가? 어느덧 10년이 지난 지금, 내가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부분은 그녀의 집, 지금도 그녀의 집인지는 알 수 없는 그 곳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들어 그녀의 방이라고 생각했던 곳을 바라본다.


그녀는 거기에 없을테지만, 어린 시절 그녀에게 향했던 내 마음이 고개를 드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그 곳으로 시선이 가게 되더라.


두 번째 사랑, 순정은 대학교 즈음이었다. 이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젊은 시절에 누군가를 향한 동경이자 그리움이었다. 많은 이들을 마음에 품었다. 내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 중에 하나로 편지를 썼다. 지금 생각해보면 개발새발로 쓰는 글씨로 그녀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했다. 가끔 그녀도 답장을 보내줬으나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군대에 있을 때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기억이 남아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파트너와 함께 선상 파티에 참여했는데, 그때 그녀에게 부탁했다. 그녀는 흔쾌히 내 요청을 들어주었고, 그 날 밤은 내가 그녀와 사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던 걸까? 내가 고백해주기를 기다렸을까.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과거의 일이고, 지금 그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 시기에 또 마음에 품었던 여자는, 공인이니까 이름을 밝혀도 상관 없네. 당시에는 나와 같은 나이라고 생각했으나 알고보니 2년 연상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후 지속해 소설을 쓰는 와타야 리사다.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을 시작으로 '인스톨', 대학교 입학 후에 쓴 '꿈을 주다', 그리고 최근에 발간한 '불쌍하구나?'를 읽으며 그녀도 나와 똑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그녀는 소설을 쓰고 있으니 나는 꿈을 포기한 아이구나...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다.


두 번째 사랑의 연장은 군대를 다녀와 3학년이 된 시기였다. 나는 어설프게 여자들을 좋아하려고 노력했고, 상대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를 기준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과정과 결과가 뒤틀려 좋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으며, 나는 그녀들에게 상처를 준 선배, 어설프게 페미니즘에 도전하는 등 아는 척하는 재수 없는 남자가 되었다.


사랑의 연장에 대한 이야기를 풀기 전에 페미니즘을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페미니즘은 여성주의로,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올바르지 않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이러한 문제의 본질을 널리 알려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학문이다.


내가 문제로 지적한 부분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남성이 배우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남성이 페미니즘을 배우는 것은 결국 사변적 주장을 펼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니 남성이 제대로 페미니즘을 접하기 위해서는 학문의 스타일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맞긴 하다. 그러나 애초에 내가 그런 주장을 할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했는가? 학문의 존재에 대해 논할 정도로 충분히 공부를 했다고 보는가?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리고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가를 평가하는 것은 그저 던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어떤 문제를 제기하려면 그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하는가를 같이 제안해야 한다. 단순히 이 부분이 틀렸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셔야 합니다,라는 것이 아니라 이 부분이 틀렸으니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습니다고 하는거지.


그때의 나는 무분별하게 이래서 이 건 쓸모가 없다, 의미가 없다, 배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 말에 1%의 진실이 담겨있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어쩃다는건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좋을지에 대한 제안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즘을 헛된 시각으로 배우고 말았다.


이런 말을 그때 내가 대들었던 교수님에게도 해야하는데, 언제쯤 가능할까? 이번 스승의 날에 교수님을 찾아가는 걸 고민해봐야겠다.


(다음 주에 계속)



"꿈이 있었다."



3년 전, 나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되고 싶은 직업이 있었고, 하고 싶은 목표가 있었으며, 만나고 싶은 여자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하나씩 멀어져만 갔다. 어떻게든 살아가면서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버리고, 좀더 현실적인 목표를 노리고, 돈과 시간을 핑계로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지금 문자와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하면, 몇 명이나 나의 요청을 받아줄까?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우리는 서로가 함께 했다. 문과대 컴퓨터실 앞의 휴게실, 학생회관 1층과 지하의 구내식당, 커피숍, 정문과 후문의 음식점 등 우리는 같은 수업을 들으며 서로의 일부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도서관과 후문의 원룸을 오가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2년이라는 시간을 모두 그 꿈을 위해 보냈다면, 어쩌면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시기의 나는 너무도 많은 꿈을 꾸었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꿈을 이루기만 하면 모든 시간을 쏟겠다는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시간을 보냈다. 결과는 어느 것도 이루지 못했다. 어중간한 실력, 그래도 모 방송사의 필기시험을 쳤다는 걸 자랑으로 여기며 정권이 바뀌었으니 당연히 나와 같이 깨어있는 이는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5년을 보내자. 그러면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미래가 내게 펼쳐진다.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3년 전에 되고 싶다고 생각한 직업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끼워맞추자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의 연장이라고 합리화하는 게 가능하지만... 꿈을 쫓으며 2년을 보내고, 내게 남은 건 아집이었다.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 나는 더 크고 더 좋은 일을 해야하는 사람이니까. 사람이 황폐해지더라.


나는 인벤을 다니고 있다. 게임을 좋아한다는 이유, 글을 쓰고 싶다는 이유로, 1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배운 만큼 많은 것을 잃었다. 누가 물어본다면 "내 글을 쓰지 않습니다. 소설을 쓴지도,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도,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모두 잊었습니다."


이 블로그에는 내 소설이 있다. 술을 많이 마시고, 다음날 쓰린 배를 움켜쥐고 써내려갔던 단편과 중편들, 그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나 그 모든 시간에 소설을 쓰지는 않았다. 그래도 날짜는 정해두고, 이때까지는 써야지...라는 목표는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게 없다.


글을 써볼까 싶어 다시 이 블로그에 로그인을 하니, 3개월 간 접속하지 않아 휴면계정으로 전환되었다는 경고 문구가 떴다. 씁씁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나.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왜 하지 않았나. 라는 후회가 마음 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지금과 3년 전 내가 생각한 목표는... 요즘 내가 자주하는 말이 '잘 모르겠다'이다. 잘 모르겠다. 3년 전의 내게 목표가 있었나? 지금의 내게는 회사에서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그 목표는 있지만, 인생을 두고 원하는 목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왜일까. 목표가 있긴 있었으나 모든 시간 내내 그 목표를 바라보고 있던 것이 아니었으며, 꿈에 도달하는 과정에 목표라는 건 주기적으로 바뀌기 마련이니 지금의 목표가 중요한 게 아니다고 얼렁뚱땅 생각했다는 거겠지. 너 말야. 네가 생각하는 꿈과 목표는 무슨 차이야. 지금 말하는 거 보면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만 같은데...?



그러나 3년 전과 지금의 차이에는 확실한 게 하나 있긴 하다. 그때는 부모님께 돈을 받아 생활했고, 지금은 내가 돈을 벌어 살고 있다는 것. 내가 번 돈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돈 씀씀이가 달라진다는 것. 가령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사고,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어머니께 전화해서 돈을 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없다.


전화는 내게 그런 의미였다. 집에는 꿈을 달성하기 위해 공부하는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지금 생활비가 없어 밥을 먹지 못하니 돈을 보내주세요. 그런 하소연을 할 때만 집에 전화했다. 2년을 그렇게 사니 무감각해졌다. 돈이 없으면 당연히 그래야하는 것처럼 전화를 했다. 마치 내가 돈을 맡겨놓은 것처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마법처럼 통장에 많은 금액이 입금되었다. 그러면 또 기분이 좋아져 이마트로 가서 삼겹살, 소주를 사거나 더 기분이 좋으면 스테이크용 소고기와 막걸리를 사서 행복하게 하루를 보냈다.


미안했냐고 묻는다면, 확실히 미안하긴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그렇게 생활하니 그게 당연하다는, 습관의 꼬리가 내게 붙었다. 가끔 어머니가 "너는 돈이 필요할 때만 집에 전화하더라."고 말하면, 당황하면서 둘러댔다. 그래도 나는 양심은 있었나보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어머니의 그 말에는 매번 당황했으니까.



돈이 없다는 핑계는 내가 여자친구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변명이 되었다. 부모님에게도, 나에게도. 나는 꿈을 향해 배고프게 살아가는 사람이니 여자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않'는거라고. 근데, 그건 변명이다. 30년을 살아오면서 내가 연애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돈 때문은 아니다.


그건... 




(계속)






World of Warcraft: War Crimes(전쟁범죄: 광기의 끝)

저자
크리스티 골든 지음
출판사
제우미디어 | 2014-06-27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광기에 사로잡힌 가로쉬 어떻게 그를 심판할 것인가. 얼라이언스와...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전쟁 범죄'는 살아남은 자의 아픔과 상처를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가로쉬'가 호드의 대족장이 되어 일으킨 '대량 학살, 살인, 강제 이주, 강제 실종, 노예화, 아동 유괴, 고문, 죄수 살해, 강제 임신'의 9가지 범죄를 중심으로 풀어나가지만, 그와 동시에 각각의 사건이 결과가 되기까지 주변 인물들이 책임을 유기하거나 방관한 부분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소설 내에서 가로쉬는 죽어 마땅한 악당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있었음에도 그 자신의 판단으로 테라모어 파괴, 판다리아 침공, 오그리마 공성전까지 아제로스에 피바람을 불게 했다는 점은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부분만 본다면 가로쉬가 얼마나 나쁜 일을 저지른 오크인지, '오크제일주의'에 빠져 다른 종족을 배척하는 전쟁을 벌인 동조자들이 많았는지, 가로쉬의 군대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지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소설을 좀더 깊게 살펴보면, 아제로스에 전쟁의 불길을 퍼트린 가로쉬를 재판하면서도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성립 이전부터 이뤄진 범법 행위와 각 종족을 이끈 지도자들의 판단으로 생긴 여러 문제까지도 다루고 있다. 


즉, 가로쉬가 저지른 범죄는 가로쉬가 모든 것을 계획한 게 아니라 오크와 드레나이의 관계, 만노로스의 피가 열었던 암흑의 시대를 통해 적과 아군으로 뚜렷하게 나뉜 진영간의 다툼으로 오래전부터 쌓인 갈등의 씨앗이 터진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 모든 죄악이 가로쉬 혼자의 잘못인가, 혹은 그러한 상황이 되도록 만들었던 이들에게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도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접근 때문에 소설은 가로쉬의 범죄라는 측면과 얼라이언스와 호드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범죄라는 측면으로 나눠서 조심스럽게 진행되는데, 이 두 가지 측면은 시간 경계에 따라 겹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는 등 정확하게 누구의 책임이라고 나누기가 모호하게 구성되어 있다.


재판 과정이 진행되면서 가로쉬와 간접적, 직접적으로 연관된 아제로스의 영웅들은 각자의 가치관으로 유죄 유무를 판단하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살아남은 자로서 '죽음'과 '상처'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아야 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자로서 자신을 믿는 이들을 이끌어야 하며,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방법을 찾기 위해 가로쉬의 재판에 참여했다. 그들은 재판이 진행되는 9일 동안 가로쉬의 범죄와 자신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만약, 이 소설에서 화려한 전투씬이나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이벤트를 원한다면 그런 기대는 버리는 게 좋다. '전쟁 범죄'는 아제로스의 과거를 정리하면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복선을 설치하는 확장팩 사이의 징검다리라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대족장' 가로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바리안 린과 안두인 린, 제이나 프라우드무어와 칼렉고스, 티란데 위스퍼윈드, 스랄(고엘)과 아그라, 볼진, 바인 블러드후프가 주요한 인물로 등장해 각각의 입장과 갈등을 풀어나간다.


여기에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관계와 관련된 갈등을 제시하기 위한 부분으로 알렉스트라자, 벨렌, 알레리아와 실바나스의 일화가 적절히 배치되면서 앞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나아가게 되는 방향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확장팩 '드레노어의 전쟁군주' 출시 이전에 발간된 '전쟁 범죄'는 아제로스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인 영웅들의 이야기이자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가로쉬 개인에 대한 이야기로는 죄악의 확인과 심판, 그리고 심판 이후의 또다른 기회를 얻는 이야기이다.


마지막으로 고엘이 증인석에서 말한 대화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저는 청동용이 아니기 떄문입니다. 저는 매 고비마다 제가 내린 결정으로 벌어질 일들이 모두 무엇일지 알면서 시간 속을 때맞춰 이리저리 훨훨 날아다닐 수 없습니다. 저는 필멸자이고, 여러분처럼 제 앞에 닥친 일만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저는 어느 것 하나 좋은 결정이 아닌 상황에서 그중 가장 좋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가로쉬를 제가 없는 동안 호드를 이끌 지도자로 임명했습니다. 그리고 대격변이 일어나자, 그대, 바인 블러드후프는 저와 함께 있었고, 제가 왜 가로쉬에게 임무를 맡겼는지 그대는 이해했습니다. 제가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느냐고요? 그렇게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건 조금도 없습니다. 우리는 매분 매 순간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는 실수하고, 또 그 실수를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입니다."

바인이 대답했다.

"가로쉬 헬스크림도 실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실수를 안고 살기가 훨씬 힘들겠지요."

고엘이 대답했다.

"가로쉬가 앞으로 계속 산다면 그렇겠지요."(247)


변화를 이야기할 때는 단어를 꺼내기 전에 잠시 고민하는 편이 좋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설령 단어를 선택했더라도 적절한 조합으로 배치하여 문장으로 구성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까.


가령 과거-현재-미래라는 연관된 세 단어로 문장을 만든다면,


과거에 무엇을 했고, 그 과거 이후 즉 현재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마지막으로 미래에 내가 무엇을 하는가를 적는 방향으로 문단을 구성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사람들이 과거-현재-미래 라는 세 단어의 조합에서 자연스레 떠올리는 흐름이니까.


반대로 미래-현재-과거라는 조합도 가능하긴 하다. 그러한 조합은 미래에 일어난 특정한 일을 바탕으로 그 일이 생기게 된 근월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글의 흐름을 특정 사건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현재-미래-과거나 현재-과거-미래는 현재에 중심을 두고 전개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현재에 있는 '나'가 특정한 계기로 시간축이 이동하게 됨으로써 일어나는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제시하게 된다. 다만, 이는 그만큼의 개연성과 이야기 전개가 필요하므로 특정한 문단 안에 전체 이야기를 담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변화를 이야기할 때는,


과거-현재, 현재-미래라는 연결 중에서 '과거-현재'에 중점을 두게 된다. 물론 현재 바라는 희망사항을 미래로 미루는 기원이라는 방식으로 변화를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과거-현재'로 과거에 '나'가 어떠했고, 그러하기에 '현재'에 '나'는 어떠하다는 전개가 가능하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어떤 차이인가?


'과거'의 세상과 '현재'의 세상은 어떤 차이인가?


이러한 변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제일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적절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이다.


'과거'에만 사용한 단어가 있고, '현재'에만 사용한 단어가 있다. 둘의 시간축에 연관된 단어가 있을 수도 있으며, 어느 쪽에서나 상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 이러한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므로 주의하고 또 주의할 필요가 있는데-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사는 우리의 삶은 변화에 익숙해져 있으니 과거를 현재와 동일하게 보는 경우가 생긴다.


어쩌면.. 그러한 탓에 글을 쓰기가 쉽지 않겠지만 :)


오랜만의 횡설수설은 여기까지!




아카쿠치바전설

저자
사쿠라바 카즈키 지음
출판사
노블마인. | 2007-10-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07년 제60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 독특한 매력을 지...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사쿠라바 카즈키 씨의 소설은 다양하다. 장르, 소재 등등. 요즘 그녀의 책에 흠뻑 빠져있다.


많은 것을 견디며, 사회 모순과 체념을 받아들이며 떠돌듯 어른이 되어간다. 맑은 것과 탁한 것을 함께 마시며 어른이 되어간다. 세상에 나가면 시한 매일매일과 영원히 싸워야 한다. 그런 일은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아주 먼 옛날부터 다들 그렇게 살았는데. 할머니 시대에도 엄마 시대에도 그리고 현대에도 같은 또래의 대부분은 그게 사회에 적응해서 일하고 사는데, 나는 그걸 못 했다. 부모로부터 사회에서 살아나갈 힘과 각오를 이어받지 못한 것이다. 힘든 일이야 어디 가나 있겠지만 그것에 상처받을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자신감도 없어서, 그래서 도망치는 것이. (460)


글을 쓰다 Thinking 2013. 10. 24. 11:16

작가가 되겠다고 말하면 백 중에 아홉은 글을 쓰는 이유를 물어본다. 글을 쓰는 특별한 계기가 있냐고. 그들은 과거를 끄집어내기 좋아하면서 미래에 관해 한마디도 묻지 않는다. 어떤 글을 쓰기 위함이라고 말하면 어떤 글을 왜 쓰게 되었냐고 다그치며, 어떤 글처럼 쓰고 싶다고 말하면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냐고 묻는다.

작가는 현실로 일어난 일을 글로 쓰는 사람이 아니다. 찰스 디킨스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작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악마와 대면하게 만드는 일을 한다고. 현실의 어떤 대상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든 악마가 진정 무서운 법이라고. 그의 말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쓴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지금껏 얼마나 썼는가와, 지금껏 상을 받은 적이 있냐라는 질문들이다. 작가가 된다는 것에 으레 따라오는 선입견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는 질문들이다. 선입견 첫번째는 소설가가 쓰는 글은 보통 사람들이 쓰는 글과는 다르며 오랜 시간을 들여야 된다는 믿음이다. 특히 양반가의 자손으로 학문의 가치를 숭배하다 못해 절대적으로 여기는 아버지와 집안 사람들의 믿음은 신념과 동일어로 여겨질 정도다. 선입견 두번째는 결과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믿음이다. 글을 쓴다고 말하려면 매 번 인정을 받아야 한다. 즉, 그들에게 작가는 타고난 재능으로 어릴적부터 그 방면에서 특출난 사람이다.



글을 쓰지 않고 오랜 시간을 보냈다. 고작 세 문단을 썼는데, 문장과 문장에 연결이 없으며 화제가 막 뛰어다닌다. 이래서야 다시 글을 쓸 수나 있을까. 한심하다...



소설 어떻게 쓸 것인가

저자
프랜신 프로즈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9-09-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문학의 거장들에게 소설 창작을 배운다! 단어 선택에서 문단 구성...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얼마 전, 공동 창작한 첫 소설을 매우 성공적으로 출판한 두 젊은 작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그 작품과 후속 작품 출판을 위해 열린 편집 회의에서 등장인물을 더욱 호감이 가는 인물로 수정하라는 압력을 계속 받았다고 했다.

 이것이 요즘 작가들이 가장 흔히 드는 말이다. 등장인물들에게 호감이 가고 공감이 가야 독자들이 그 인물들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 그 말은 자주 동일시한다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 같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현대 소설에서 우리가 등장인물과 동일시하기 위해서는 그 인물들이 우리처럼 좋은 사람들이고 우리의 경험과 똑같은 경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고등학생 이야기를 읽고 싶어 한다. 그 학생에게는 약간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보냈던 것과 똑같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공감한다. 우리는 동일시한다. 우리는 좋아한다. (...) 과거 문학을 읽으면서도 늘 소설 속 인물을 사랑하고 그에게 공감해 오기는 했지만, 그런 공감을 강요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 현상인 듯 하다. (...) 아직 미숙한 남녀 주인공들을 계쏙 창조해 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초보 소설가에게는 걸작은 살아남는다는 사실이 용기를 줄 것이다. 걸작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저 등장인물들에게 흥미를 갖고, 그들의 운명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복잡한 성격에 호기심을 갖고, 그들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싶어하는 일뿐이다. 이런 걸작들을 읽다 보면, 작가들은 종종 독자로 하여금 아름답고 진실하고 선한 인물들에 공감하도록 하는 일이 매우 쉽다고, 순진하고 자비로운 인물들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척 간단하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는다. (333-5)


이 발췌를 읽는 순간 내가 쓰는 소설에 내가 들어가야만 했던 이유를 깨닫았다. 나와 동일시하는 주인공이 소설에 있어야하며, 이러한 소설이 사람들에게 쉽게 읽힐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쉽게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도 쉽게 읽힐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는 내가 써야할 소설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는 내가 지금껏 읽었던 많은 소설과, 현대 문학의 대표라고 불리는 소설가들이 선택한 보편적인 방법이며, 이는 진정으로 쓰고 싶은 소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았다. 나는 소설가가 되기 위해 모든 이들이 선택하는, 모든 이에게 호감이 가는 인물, 즉 동일시가 이뤄질 수 있는 보편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글을 쓰기 위한 새로운 길을 찾았다.




소생이야기

저자
오츠 이치 지음
출판사
북홀릭 | 2010-02-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진솔함과 픽션을 오가는 오츠이치의 유머러스한 사적인 이야기!미스...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최근 오츠 이치의 <소생이야기>를 읽었다. 작가는 서문에 이 책을 읽거나 사지 말기를 권유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올린 글의 단편일 뿐이라고 말하며, 별다른 내용이 없으므로 시간 낭비라고 강조한다. 특히 엉망인 문장이 많다며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고 너스레를 떤다.


솔직히 말하면, 앞 부분은 신선했지만 뒤로 갈수록 지루했다. 글의 패턴이 동일하므로 익숙해지니 무덤덤했다. 다만, 그가 재미난 사람이라는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현실과 환상에 경계가 없다. 글을 읽다보면 그의 '거짓말'에 은근슬쩍 넘어간다. 2. 작가 본인이라기보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작가가 만들어 낸 새로운 인물이 쓰는 글이다. 3. 글쟁이는 글쟁이다.